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인 정현식 씨(가명·68)는 10년 전 직장을 떠난 후 지금은 서울 쪽방촌에서 혼자 살고 있데요.
정씨가 노후 준비로 생각했던 작은 아파트와 퇴직금은 불행히도 아들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 때문에 전부 사라졌어요.
아내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 홀로 된 정씨는 69만원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2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어요.
작은 일자리나마 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주민센터를 찾는 그는 빈곤한 노후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독감, 상실감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상황이예요.
고령화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노인'은 갈수록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0년 말 8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5.7%를 차지한데요.
고령자가 한 명 이상 있는 가구 비중도 전체(2035만가구)의 22.8%까지 늘었어요.
100가구 중 23가구가 고령 가구죠.
하지만 고령층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어요.
지난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국민은 은퇴 후 적정 생활비로 가구당 월 294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어요.
이 중 절반이 넘는 54.8%가 '준비 부족'을 호소했다. 고령층 10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잠재적 빈곤층으로 향할 수 있다는 분석이예요.
노인 빈곤 문제는 주요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심각하데요.
한국 고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아요.
복지제도가 발달한 프랑스나 노르웨이는 한 자릿수이고 미국 또한 23.1%로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데요.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 50% 미만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데요.
올해 1인 가구 중위소득이 182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고령층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월 90만원가량의 돈으로 어렵게 생활한다는 뜻이예요.
정부가 도움을 주기에도 힘에 부친데요.
통계청과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는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데요.
고령화사회(고령 인구 7% 이상)에서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5년이예요.
(은퇴하는 순간 소득 60% 줄며 생계절벽…"사는 게 공포" 한숨 빈곤 내몰리는 은퇴자들
생존 위해 일하는 노인 늘어 "일을 하고 싶다"는 응답자 2년 새 9%서 68%로 폭증
60세 이상 고령자 자산비중 부동산이 78%로 절대적 당장 쓸 현금 없어 더 불안)
고령화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사회가 오고 있어요.
의료기술의 발달로 삶의 시간은 늘어나고 있지만 삶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죠.
앞에서 언급한 정씨의 사례도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예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예요.
수명은 늘고 수입은 충분치 않게 되자 은퇴를 하고도 일하는 고령자가 꾸준히 늘고 있어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69세 노인의 경제활동참여율이 2017년 42.2%에서 지난해 55.1%로 불과 3년 만에 12.9%포인트나 올랐어요.
또 같은 기간 일을 하고 싶다는 65세 이상 노인은 9.4%에서 68.4%로 폭증했어요.
일을 하고 싶은 이유로는 73.9%가 생계비 마련을 꼽았어요. 은퇴 후에도 편안한 노후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끝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예요.
보험개발원이 만든 '2020 은퇴시장 리포트'에서도 은퇴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6316만원으로, 은퇴 전(4억8185만원)의 75.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어요.
평균소득도 은퇴 전에는 6255만원에 달했지만 은퇴 후에는 2708만원으로 58%나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또 KB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가 은퇴자·은퇴예정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필요한 월평균 생활비는 289만원인데, 이에 대한 준비는 64%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은퇴 후 예상 현금 수입이 월 185만원 수준이라는 설명이예요.
은퇴 상담을 위해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를 찾은 이중환 씨(59)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지난해 임대 수입이 크게 줄어 대출 이자를 갚는 데 허리가 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금리가 오른다는 얘기도 있어 재산이 계속 줄어들 것 같은 불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어요.
고령층의 전체 자산에서 금융 자산보다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도 문제예요.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6.4%에 달한다고 답했어요.
금융 자산 비중은 19.6%에 불과했고 자산은 있어도 당장 쓸 돈이 없다는 얘기예요.
통계청의 '2020 고령자 통계'에서도 60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순자산액은 3억6804만원인데, 여기서 부동산 비중이 77.2%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은퇴 자산의 50% 이상이 금융 자산으로 구성된 것과 상반된 결과예요.
황원경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부장은 "우리나라 은퇴자들은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노후 준비도 늦어 당장 쓸 수 있는 현금 자산이 크게 부족하다"며 "그나마 쓸 만한 자산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집밖에 없어 이를 주택연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고령층의 상당수가 주택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것도 문제로 꼽혀요.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맡기고 일정 금액의 연금을 받는 제도예요.
부부 사망 뒤에는 주택이 국가 소유로 바뀌기 때문에 일부 고령층의 경우 '내 집을 뺏긴다'는 오해로 이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이예요.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설문조사에서도 주택연금 활용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60.9%가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했고,오히려 절반가량인 45%의 응답자는 주택을 자녀에게 물려줄 계획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퇴 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크죠.
KB골든라이프연구센터 설문조사에서 노후 생활이 현재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33.1%에 불과했고 현재와 비슷하거나 나빠질 수 있다는 응답이 66.9%로 더 많았어요.
보험개발원 조사에서도 노후 생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 5점 만점에 3.3점 응답에 그쳐 보통 정도의 만족도를 보였어요.
황 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강조되면서 경비나 주차 등 노년층이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자리도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며 "자녀 교육과 결혼 등에 그나마 모아둔 금융 자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은퇴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어요.